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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문화트렌드] 갓생이 멈춘 자리, 아보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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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제 이야기로 시작해볼게요.

자기계발관련 인스타그램과 책 블로그를 운영한 지 거의 5년이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글과 이미지로 채웠다가 이젠 트렌드에 맞춰 영상 콘텐츠의 비중이 많이 커졌지요.   그러다 어느 날, 시간을 정리하다가 문득 갸우뚱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운동과 공부에 쓴 시간보다, 기록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데 쓴 시간이 더 많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그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건 성장을 위한 기록일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기록일까?'

 

나를 위한 시간이 증명을 위한 시간보다는 많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즘 문화 트렌드가 ‘갓생’에서 ‘아보하’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까요.

 

아보하란 '안녕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로 특별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잘 해낸 하루보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를 더 값지게 여긴다는 감각이기도 하구요. 뜻입니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갓생은 언제부터 '증명'이 되었을까

아보하 전에 '인증과 플래너'를 유행시켰던 갓생 이야기 부터 해야겠네요. 갓생은 'God(신+)생(생활)' 즉, 신처럼 완벽한 삶'을 뜻하며,일상에서 자기 관리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삶의 방식이었죠. 본래의 출발점은 분명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몸을 움직이고, 하루를 정리하며 ‘내가 원하는 나’에 가까워지는 것. 나를 돌보는 방법이었어요 꾸준히 하려면 목표관리와 습관 형성이 필요하고 이는 혼자하기 힘드니 SNS인증을 활용했죠. '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의 응원과 시선을 빌려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장치였죠.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갓생의 핵심 도구가 의지나 목표가 아니라, 플래너와 인증샷 그 자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했는가보다,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기록은 성찰이 아니라 결과 보고서가 되었고, 삶은 점점 콘텐츠에 맞게 편집되기 시작했죠.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은 ‘제대로 남겨졌을 때’만 유효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시되는 삶이 남긴 피로감

끊임없이 몰아치는 갓생은 결국 피로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갓생을 살기 시작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의 노력과 타인의 노력을 ‘가시적인 결과물’로 비교하게 되었죠. 세상에는 나보다 더 완벽하게 갓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니까요.

여기에 더해, 실제로 무언가를 실행하는 시간보다 정리하고, 보완하고, 인증하는 데 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과연 무슨 소용이지?’

 

타인의 지지와 응원을 받기 위해 시작한 인증은, 어느새 나를 증명하기 위한 ‘보여주기’에 치중하며 알맹이를 잃었습니다. 노력하는 것도 벅찬데, 그것을 또 가시화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내가 만족하면 충분한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따라붙기 시작한 겁니다.

 

‘증명’에서 ‘향유’로의 전환

그래서 지금, 또 다른 선택이 나타납니다.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

 

아보하의 삶에서는 보여주지 않아도 성립하는 만족, 즉 비가시적인 만족이 중심에 놓입니다. 굳이 SNS에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순간들,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남겨두는 하루가 늘어납니다.

 

쓸모 있는 공부 대신 그냥 좋아서 하는 뜨개질, 목적 없이 걷는 산책처럼 생산성이 배제된 활동에서 위안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삶은 더 이상 설명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향유는 공유를 전제로 하지 않으니까요.

 

‘성장’ 대신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

과거에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성장’이 절대적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외부의 풍파에도 내 평온함이 깨지지 않는 상태, 즉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것이 더 고차원적인 능력으로 여겨집니다.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소모해야 할 연료가 아닌, 지켜야 할 '자산'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죠. 무리한 일정은 도전이 아니라 자산 손실이며, 감정의 급등락보다는 잔잔한 평온을 유지하는 ‘저성장 기조의 평정심’이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더 잘 되기 위해 나를 깎아내는 대신, 마모되지 않고 나를 보존하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관계에서 나타나는 미니멀리즘과 비공개의 미학

이러한 변화는 관계의 영역에서도 드러납니다. 갓생이 인맥 관리와 외부 활동까지 포함하는 확장의 삶이었다면, 아보하는 에너지를 아끼는 ‘선별적 관계’를 지향합니다. 모든 모임에 참여해 나를 소모하기보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소수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머뭅니다.

 

기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이 사라진 게 아니라, 기록을 '공개'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전시보다 비공개를 택함으로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조용하고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결국 갓생에서 아보하로의 이동은 삶의 기준이 ‘타인’에서 ‘나’로, ‘성취’에서 ‘무사함’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갓생이 삶의 에너지를 당겨 쓰는 방식이었다면, 아보하는 에너지를 비축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내가 ‘얼마나 해냈다’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게 되자, 남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오늘 잘 지냈어?”라는 물음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저 역시 노력의 ‘증명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노력하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감각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으니까요. 이제는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증명하는 시간보다, 나에게 남겨두는 시간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바깥의 시선보다 내 안의 리듬에 귀 기울이며,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하루를 선택하려 합니다. 삶은 길어 보이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는 생각보다 짧으니까요.

저와 비슷한 감각을 가진 많은 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잘 되는 삶보다 무너지지 않는 삶을 선택한 당신의 오늘 하루가, 부디 무사했기를 바랍니다.”

 

 

@Defi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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